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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접는 사회복지사(하)] 김세진씨 하루…생보자·독거노인 챙기다 ‘
04-02-19 12:47 1,644회 0건
서울 방학동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김세진(30)
씨의 하루는 재산목록 1호인 수첩을 챙기는 일부터 시작된다. 김씨의
수첩에는 그가 책임지고 있는 생활보호대상자 60가구의 인적사항은 물
론 독거노인 5명의 병력(病歷)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16일 오전 8시30분에 출근한 김씨는 아침 조회 겸 하루 일정을 보고하
는 회의를 마치고 복지관 내에 있는 푸드뱅크로 향했다. 푸드뱅크에
는 쌀 도너츠 고추장 된장 초코파이 등 20여종의 먹을거리와 생활용품
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김씨는 이곳에서 혼자 살고 있는 독거노
인들에게 가져다 줄 쌀 10㎏ 2포대와 고추장 햄 등 부식거리,어른용
기저귀 등을 챙겼다.

낑낑대며 소형 승합차에 짐을 옮겨 실은 김씨는 자원봉사 결연을 맺
은 한 병원을 찾았다.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할머니의 처방을 받
아 약을 갖다주기 위해서다.

고층 아파트촌 사이로 10여분간 운전해 도착한 곳은 도로 옹벽과 고급
빌라 건물 사이의 좁은 지하 공간에 판자를 얼기설기 잇대어 만든 허
름한 무허가 주택. 대낮인데도 햇볕이 전혀 들지않아 지하로 내려가
는 층계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할머니 나 왔어.밥 먹었어” 어깨에 진 쌀포대를 내려놓으며 김씨
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성자(82) 할머니의 방은 2.5평 정도. 이
곳에서 10년 가까이 혼자 살고 있다. 이 할머니는 무릎이 아파 일어
설 수 없다며 앉아서 ‘손자’의 손을 잡는다. 방 한구석에는 아들 내
외와 손자들의 사진 액자가 줄줄이 걸려있지만 몇 년째 소식을 보내오
지도 않고 있다.

할머니의 무릎에 파스를 붙여드린 뒤 김씨는 냉장고와 전기밥솥 등을
열어보며 음식이 모자라지는 않은지 일일이 확인한다. 김씨는 30여분
간 말벗이 되어 이것저것 불편한 점과 건강 상태를 물어보고 나서야
일어선다.

김씨가 “할머니 머리를 만져줄 미용사를 데리고 오후에 다시 들르겠
다”며 인사를 건네자 할머니는 “추운 데 뭐하러 또 오느냐”며 팔
을 내저으면서도 눈가엔 아쉬움이 역력했다. 거동이 불편해 나다닐 수
도 없는 할머니는 일주일에 2∼3번 찾아오는 김씨말고는 사람구경조
차 못하기 때문에 그와의 헤어짐이 더욱 아쉬운 듯했다.

눈이 채 녹지 않은 비탈길을 굽이굽이 돌아 김씨가 찾아간 곳은 김경
수(69)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지하 셋방. 1평 남짓한 작은 방에는 빈
냄비그릇과 담배꽁초로 어지러워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전날 도우미
아줌마가 만들어 놓은 된장찌개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김씨가 독거노인을 자주 찾는데는 이유가 있다. 허약한 건강과 열악
한 주거 환경 때문에 언제 병을 얻어 드러누울지 모르기 때문이다. 거
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들의 민원을 처리해 주고 생활보호대상자들
에게 학비 생활비 자립자금 등을 지원하는 게 그에게 맡겨진 직무지
만 그의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00년 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복지사로 나선 김씨가 초상을 치른 것만
해도 무려 다섯 번,문병간 횟수는 헤아릴 수도 없다. 혼자 사는 노인
이 유족도 없이 사망하면 상주가 돼야 했고 몸져 누우면 병원에 입원
시켜주는 보호자 역할을 대신했다.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대충 때우고 나면 몸은 이미 파김치가 되지만 책
상에는 해야할 일들이 아직도 산더미처럼 남아있다. 모자라는 일손을
채우기 위해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후원자를 물색하는 것도 김씨의
몫. 편부 편모 가정의 어린이나 소년소녀가장을 후원자와 맺어주는 일
도 빼놓을 수 없다. 저녁 때는 인터넷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공
고를 내거나 후원자에게 후원금 사용내역을 보내야 한다.

올해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 가정의 의료실태조사 업
무를 새로 시작,일거리가 크게 늘었다. 이것저것 잡무를 처리하다보
면 퇴근시간은 오후 8시를 훌쩍 넘는다. 김씨는 “주위에서 경제적인
문제로 복지관을 떠나는 사회복지사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면서 “우리 사회에는 소외된 이웃들과 이들을 보살피는 사회
복지사의 희생과 애환도 있음을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황일송기자 ilsong@kmib.co.kr

- 국민일보 (기사입력 : 2004.02.16,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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