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기사에 소개된 김진숙 선생님은 저희 복지관에 전문자문위원이시랍니다.*
언제나 해가 뜨는 집에서 살아서일까.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다부진 모습의 열린사회 북부시민회 김진숙(33·여) 사무국장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하다. 김 국장은 독거노인과 장애인 등 어려운 이웃들의 집수리를 도맡아 해주고 있는 북부시민회의 자원봉사 모임 ‘해뜨는 집’을 이끌고 있다.
전북 순창 출신인 김 국장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상경했고 고등학교를 마친 뒤엔 유망했던 부동산학과에 진학했다. “전공도 흥미에 따라 고른 것은 아니었어요.성적에 맞춰 학교를 골랐고 그 중에 취업이 잘 될만한 학과를 고르다보니 그렇게 된거죠.” 그는 1993년 대학을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다닐 때까지는 여느 직장인과 다름 없었다. “그저 시키는대로 일하고 주는 월급 받아서 밥 해먹고… 한 2년쯤 다니니까 삶이 무미건조하고 시시하게 느껴졌어요.”
김 국장은 보람을 찾아 1994년 열린사회 북부시민회의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삶터 가꾸기’라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아이들을 안전하게 양육할 수 있도록 놀이터 안전 등을 교육하고 그림책,놀이기구를 대여하는 활동이 그의 첫 시민활동이었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일하면서 함께 웃고 우는 동안 삶의 활력이 무엇인가 배우게 되었다”는 그는 1996년 회사를 그만두고 상근 활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직업 활동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밝히자 어머님과 친지,직장동료들은 두손 걷어부치고 만류했다. 월급도 반토막이 됐다. “어머님은 싫은 내색을 많이 하셨어요. 아버님 돌아가신 뒤에 가장 역할을 하던 큰 오빠는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고 하더군요.”
시민회 활동을 하면서 특히 김씨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해오름’이라는 독거노인들을 돕는 봉사 소모임이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을 찾아가 말동무가 되어주고 목욕 등을 시켜주며 봉사활동을 펼쳐오던 중 회원들 간에 한가지 공통적인 관심사가 생겨났다. 노인들의 주거여건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 제대로 돌봐주는 사람도 없는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노인들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기 일쑤였다. 노인들도 자원봉사자들도 주거여건을 개선할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복지 당국의 도움만을 바랄 뿐 이었다.
1999년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던 김선균(41) 북부시민회 대표의 제안으로 집수리 자원봉사 모임 ‘해뜨는 집’ 사업이 시작됐다. 강북구로부터 독거노인 300여명의 명단을 넘겨받아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김씨는 작업도구를 챙기고 자재를 나르는 등 작업을 보조하는 ‘데모도’ 역할을 맡았다.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활동이었지만 사업초기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초기엔 너무 힘들었어요.집을 고쳐준다는 전화를 받은 노인들은 사기꾼이 아니냐면서 막무가내로 욕을 하면서 끊기도 했죠. 일할 사람도 마땅치 않아서 건축일을 하는 회원 5명으로는 모자라 공공근로 지원을 받기도 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첫 해엔 30가구를 수리했죠.”
집수리 활동을 하면서 현장에서 접한 독거노인·장애인들의 주거환경은 열악했다. “마당 할아버지라는 분이 계세요. 남의 집 마당에 판자로 엉성하게 지어놓은 움막 같은데 살고 계셨죠. 딱 몸하나 들어갈 만한 공간엔 겨우 전기만 들어왔었죠. 겨울엔 소주 한 병을 다 마셔도 냉기가 가시지 않아 잠들기 괴로웠다고 하시더라구요. 저희도 미처 몰랐는데 그 옆집 수리를 하면서 우연히 보게 됐죠.”
‘해뜨는 집’은 2000년 강북구 독거노인 주거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접어들었다. 지역주민들 사이에 무료로 집을 고쳐준다는 입소문이 돌아 사무실엔 수리를 의뢰하는 전화가 일주일에 두세통씩 걸려왔다. 도움이 필요한 곳은 많은데 막상 일할 사람이 모자랐다. 1년에 700만원 이상 들어가는 자재비를 회원들이 한두 푼씩 내는 회비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2001년 사무국장으로 뽑힌 김씨가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섰던 일은 지역사회에서 후원자를 발굴하는 것. “처음 3년 동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자재비를 지원받았죠. 연간 500만원∼700만원정도 받아 빠듯하게 써왔는데 2002년부터는 재정지원이 끊어졌죠. 중책을 맡아 사업을 진행하는데 막상 실탄이 없으니 막막하더라구요.” 간단한 장판이나 도배작업에도 20만원 이상이 든다는 김 국장은 “인건비를 받지 않고 자원봉사로 공사를 진행해도 자재비로만 건당 평균 70만원 정도 든다”며 “생활 형편이 어려운 독거노인·장애인들은 집수리는 꿈도 못 꾸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노력의 결실일까.2002년부터 미아동 한빛교회에서 150만원을,번동 강북웨딩홀에서 200만원을 후원하는 등 지역사회 후원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동네 조그만 지물포에서 벽지를 보내주고 쓰고 남은 공사 자재들을 보내주는 등 지역사회의 정성이 밀려들었다.
‘해뜨는 집’도 날로 번창해 건축기술자 회원이 당초 5명에서 60명으로 늘어나면서 건축기술자들의 소모임 “맥가이버”가 생겨났다. 2003년 7월까지 130여 가구를 수리했다. 작업보조를 자원하는 직장인,주부 회원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았다. 회원들의 조직력도 현저히 강해졌다. “처음엔 일하러 가야한다며 공사에서 빠지는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사무국에서 골격만 짜면 회원들이 척척 공사를 진행하죠. 요즘엔 맥가이버 회원들이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을 데리고 와요. 처음엔 끌려오다시피 했던 분들도 집수리 봉사활동의 매력에 빠져버리게 되죠.”
올해 해뜨는 집엔 햇볕이 들었다. 4월 ‘맥가이버 팀’이 오운문화재단에서 집수리 봉사로 지역사회의 복지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우정선행상 대상을 수상했다. ㈜한화,대동벽지에서 장판과 도배지를 후원하기도 했다. 김 국장은 “올해 자재비는 상금으로 충당할 수 있고 벽지·장판은 걱정 안 해도 될 정도로 많이 받았다”며 “한 해동안 마음놓고 집수리에 전념할 수 있게됐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북부시민회에서 시작한 ‘해뜨는 집’ 집수리 봉사활동은 열린사회시민연합 서울지역지부 9곳 가운데 강서,동대문,구로,송파 등 4곳으로 확대됐다. 김 국장은 “우리 지역 공사하랴 다른 지역 상담하랴 정신없이 바쁘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최소한 공사를 진행하는 하루동안은 이웃을 배려하는 행복한 사회가 구현된다”고 말하는 김 국장. “개인이 집단 속으로 함몰되기 쉬운 요즘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결국 공공의 이익이 되는 새로운 경험을 맛 볼수 있을 것”이라며 ‘해뜨는 집’으로 초청했다.
선정수기자 jsun@kmib.co.kr <국민일보>
언제나 해가 뜨는 집에서 살아서일까.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다부진 모습의 열린사회 북부시민회 김진숙(33·여) 사무국장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하다. 김 국장은 독거노인과 장애인 등 어려운 이웃들의 집수리를 도맡아 해주고 있는 북부시민회의 자원봉사 모임 ‘해뜨는 집’을 이끌고 있다.
전북 순창 출신인 김 국장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상경했고 고등학교를 마친 뒤엔 유망했던 부동산학과에 진학했다. “전공도 흥미에 따라 고른 것은 아니었어요.성적에 맞춰 학교를 골랐고 그 중에 취업이 잘 될만한 학과를 고르다보니 그렇게 된거죠.” 그는 1993년 대학을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다닐 때까지는 여느 직장인과 다름 없었다. “그저 시키는대로 일하고 주는 월급 받아서 밥 해먹고… 한 2년쯤 다니니까 삶이 무미건조하고 시시하게 느껴졌어요.”
김 국장은 보람을 찾아 1994년 열린사회 북부시민회의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삶터 가꾸기’라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아이들을 안전하게 양육할 수 있도록 놀이터 안전 등을 교육하고 그림책,놀이기구를 대여하는 활동이 그의 첫 시민활동이었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일하면서 함께 웃고 우는 동안 삶의 활력이 무엇인가 배우게 되었다”는 그는 1996년 회사를 그만두고 상근 활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직업 활동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밝히자 어머님과 친지,직장동료들은 두손 걷어부치고 만류했다. 월급도 반토막이 됐다. “어머님은 싫은 내색을 많이 하셨어요. 아버님 돌아가신 뒤에 가장 역할을 하던 큰 오빠는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고 하더군요.”
시민회 활동을 하면서 특히 김씨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해오름’이라는 독거노인들을 돕는 봉사 소모임이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을 찾아가 말동무가 되어주고 목욕 등을 시켜주며 봉사활동을 펼쳐오던 중 회원들 간에 한가지 공통적인 관심사가 생겨났다. 노인들의 주거여건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 제대로 돌봐주는 사람도 없는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노인들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기 일쑤였다. 노인들도 자원봉사자들도 주거여건을 개선할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복지 당국의 도움만을 바랄 뿐 이었다.
1999년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던 김선균(41) 북부시민회 대표의 제안으로 집수리 자원봉사 모임 ‘해뜨는 집’ 사업이 시작됐다. 강북구로부터 독거노인 300여명의 명단을 넘겨받아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김씨는 작업도구를 챙기고 자재를 나르는 등 작업을 보조하는 ‘데모도’ 역할을 맡았다.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활동이었지만 사업초기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초기엔 너무 힘들었어요.집을 고쳐준다는 전화를 받은 노인들은 사기꾼이 아니냐면서 막무가내로 욕을 하면서 끊기도 했죠. 일할 사람도 마땅치 않아서 건축일을 하는 회원 5명으로는 모자라 공공근로 지원을 받기도 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첫 해엔 30가구를 수리했죠.”
집수리 활동을 하면서 현장에서 접한 독거노인·장애인들의 주거환경은 열악했다. “마당 할아버지라는 분이 계세요. 남의 집 마당에 판자로 엉성하게 지어놓은 움막 같은데 살고 계셨죠. 딱 몸하나 들어갈 만한 공간엔 겨우 전기만 들어왔었죠. 겨울엔 소주 한 병을 다 마셔도 냉기가 가시지 않아 잠들기 괴로웠다고 하시더라구요. 저희도 미처 몰랐는데 그 옆집 수리를 하면서 우연히 보게 됐죠.”
‘해뜨는 집’은 2000년 강북구 독거노인 주거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접어들었다. 지역주민들 사이에 무료로 집을 고쳐준다는 입소문이 돌아 사무실엔 수리를 의뢰하는 전화가 일주일에 두세통씩 걸려왔다. 도움이 필요한 곳은 많은데 막상 일할 사람이 모자랐다. 1년에 700만원 이상 들어가는 자재비를 회원들이 한두 푼씩 내는 회비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2001년 사무국장으로 뽑힌 김씨가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섰던 일은 지역사회에서 후원자를 발굴하는 것. “처음 3년 동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자재비를 지원받았죠. 연간 500만원∼700만원정도 받아 빠듯하게 써왔는데 2002년부터는 재정지원이 끊어졌죠. 중책을 맡아 사업을 진행하는데 막상 실탄이 없으니 막막하더라구요.” 간단한 장판이나 도배작업에도 20만원 이상이 든다는 김 국장은 “인건비를 받지 않고 자원봉사로 공사를 진행해도 자재비로만 건당 평균 70만원 정도 든다”며 “생활 형편이 어려운 독거노인·장애인들은 집수리는 꿈도 못 꾸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노력의 결실일까.2002년부터 미아동 한빛교회에서 150만원을,번동 강북웨딩홀에서 200만원을 후원하는 등 지역사회 후원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동네 조그만 지물포에서 벽지를 보내주고 쓰고 남은 공사 자재들을 보내주는 등 지역사회의 정성이 밀려들었다.
‘해뜨는 집’도 날로 번창해 건축기술자 회원이 당초 5명에서 60명으로 늘어나면서 건축기술자들의 소모임 “맥가이버”가 생겨났다. 2003년 7월까지 130여 가구를 수리했다. 작업보조를 자원하는 직장인,주부 회원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았다. 회원들의 조직력도 현저히 강해졌다. “처음엔 일하러 가야한다며 공사에서 빠지는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사무국에서 골격만 짜면 회원들이 척척 공사를 진행하죠. 요즘엔 맥가이버 회원들이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을 데리고 와요. 처음엔 끌려오다시피 했던 분들도 집수리 봉사활동의 매력에 빠져버리게 되죠.”
올해 해뜨는 집엔 햇볕이 들었다. 4월 ‘맥가이버 팀’이 오운문화재단에서 집수리 봉사로 지역사회의 복지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우정선행상 대상을 수상했다. ㈜한화,대동벽지에서 장판과 도배지를 후원하기도 했다. 김 국장은 “올해 자재비는 상금으로 충당할 수 있고 벽지·장판은 걱정 안 해도 될 정도로 많이 받았다”며 “한 해동안 마음놓고 집수리에 전념할 수 있게됐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북부시민회에서 시작한 ‘해뜨는 집’ 집수리 봉사활동은 열린사회시민연합 서울지역지부 9곳 가운데 강서,동대문,구로,송파 등 4곳으로 확대됐다. 김 국장은 “우리 지역 공사하랴 다른 지역 상담하랴 정신없이 바쁘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최소한 공사를 진행하는 하루동안은 이웃을 배려하는 행복한 사회가 구현된다”고 말하는 김 국장. “개인이 집단 속으로 함몰되기 쉬운 요즘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결국 공공의 이익이 되는 새로운 경험을 맛 볼수 있을 것”이라며 ‘해뜨는 집’으로 초청했다.
선정수기자 jsun@kmib.co.kr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