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근로자교회 ‘피플스하우스’민범식 목사
“목사님! 제 친구가 다쳤대요”
공사장에서 잡부로 일하고 있는 자신의 동료가 대못에 발이 두 군데나 찔렸다고 나이지리아 출신 근로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얼마나 다쳤을까?’
민범식(閔範植·58) 목사의 마음이 급해온다.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 모르게 현장으로 달려가니 부상자는 이미 병원으로 옮겨진 상황. 현장 소장이 민 목사를 알아보곤 다가와 손을 꼭 잡는다.
“큰 부상은 아닙니다. 산재로 처리해 잘 치료받도록 해놨습니다. 전화를 주시지 왜 직접 오셨어요?”
그제서야 팽팽하던 긴장감이 사라지고, 한결 풀리는 민 목사의 표정을 보고 한국어를 몰라 눈치만 보던 부상자의 친구 얼굴에도 비로소 미소가 피어오른다.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문학리에 자리한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교회이자 쉼터 피플스하우스. 민 목사는 지난해 12월 29일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멀리 아프리카에서 달려온 사람들을 위해 이 공간을 마련했다.
원래 목회일이 본업이지만 다른 일로 바쁠 때가 더 많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혹 임금체불과 같은 분쟁이라도 생기면 달려가 돌봐주고 조정을 하는 것도 그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2월분 월급 7만원을 덜 받았다는 외국인 근로자의 호소에 한국인 사장을 만났더니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8일까지 있는 2월 급여를 일당으로 계산한 사장과 달로 계산한 근로자의 차이였던 것이다. 결국 사장이 껄껄 웃으며 7만원을 내놔 해결됐지만, 언어의 벽과 문화의 차이가 얼마나 쉽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나이지리아와 탄자니아 출신이 대다수인 근로자들에게 민 목사는 정신적인 아버지이자 해결사다. 한국어라고는 아직 몇 마디밖에 못 하지만 “목사님”이라는 단어만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해방둥이로 서울에서 출생한 민 목사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했다.
대기업에 10여년 몸담다가 전공을 살려 식품관련 사업을 하던 중 관심깊게 읽던 성경을 더 공부하고 싶어 아시아연합신학대학원과 중앙총신목대원에서 공부하고 97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평소 외국인 선교에 관심이 많았던 민 목사는 마침 주어진 캐나다 이민 기회를 이용해 토론토와 밴쿠버의 병원과 장애인 시설에서 목회활동을 벌였다.
“캐나다 목회 중 한국에 많은 외국인들이 동남아나 아프리카에서 들어와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2002년 현재 외국 근로자 수가 30만명이 넘어섰는데, 근무여건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죠. 잘 사는 나라보다 우리보다 못한 지역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당장 짐을 쌌지요.”
하지만 돌아온 한국 사정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쌈짓돈을 모아 마련한 목회자금으론 어디 한 곳에 교회를 지을 수도, 빌릴 수도 없었다. 처음 며칠은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있는 경기도 광주 일대를 돌아다녔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인천 만수교회 전명환 장로로부터 희소식이 날라왔다. “장애인을 위한 고용시설을 마련하려 했는데 사정이 있어 늦어지니 뜻이 있으면 우선 사용하라”는 복음이었다. 3층 건물 옥상에 자리잡은 50평 남짓한 피플스하우스는 이렇게 마련됐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주말 장터로 나가 노상 전도를 시작한 지 보름 만에 지금의 신도 10여명이 모였다. 예배가 있는 수·일요일이면 민 목사는 이들의 거처인 컨테이너나 공장 기숙사를 찾아 일일이 피플스하우스로 데려오고 다시 데려다주는 일을 반복한다.
“놀라운 건 외국인 근로자들이 국적별로 등급이 나누어져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겁니다. 나이지리아처럼 아프리카에서 온 근로자들은 동남아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자신들이 가장 낮은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이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민 목사는 열성을 다했다. 경기고 밴드부 시절 익힌 플루트과 트럼펫 연주로 음악선교를 하기도 했고 부인 민규정(閔圭貞·57)씨는 낯선 이들의 입맛에 맞춘 한끼의 식사를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 덕분에 당연히 빵을 좋아할 줄 알았던 나이지리아 신도들이 볶음밥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민규정씨의 호칭 ‘사모님’은 이들에게 ‘목사님’과 함께 가장 정다운 한국말이 되었다.
일요일마다 여는 한국어 교실 외에 4월부터는 컴퓨터교육도 할 예정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을 김춘복(차병원그룹 전무이사) 운영팀장과 이충구·강성훈·백정석·송양자씨 등 운영도우미들이 받쳐주고 있다. 이들은 두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피플스하우스를 돕기 위해 지혜를 모은다.
“성경에 ‘타국인이 너희 땅에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들을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들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언젠가 돌아갈 이들에게 사랑스런 또 하나의 조국으로 한국을 기억하게 하는 것도 제 목회의 한 부분입니다.”
나이지리아 근로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산 순둥이’ 윈스턴을 안아주며 민 목사가 힘주어 말했다. 피플스하우스(www.peopleshouse.net) (031)309-9199.
/溫宗林 기자 <조선일보>
“목사님! 제 친구가 다쳤대요”
공사장에서 잡부로 일하고 있는 자신의 동료가 대못에 발이 두 군데나 찔렸다고 나이지리아 출신 근로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얼마나 다쳤을까?’
민범식(閔範植·58) 목사의 마음이 급해온다.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 모르게 현장으로 달려가니 부상자는 이미 병원으로 옮겨진 상황. 현장 소장이 민 목사를 알아보곤 다가와 손을 꼭 잡는다.
“큰 부상은 아닙니다. 산재로 처리해 잘 치료받도록 해놨습니다. 전화를 주시지 왜 직접 오셨어요?”
그제서야 팽팽하던 긴장감이 사라지고, 한결 풀리는 민 목사의 표정을 보고 한국어를 몰라 눈치만 보던 부상자의 친구 얼굴에도 비로소 미소가 피어오른다.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문학리에 자리한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교회이자 쉼터 피플스하우스. 민 목사는 지난해 12월 29일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멀리 아프리카에서 달려온 사람들을 위해 이 공간을 마련했다.
원래 목회일이 본업이지만 다른 일로 바쁠 때가 더 많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혹 임금체불과 같은 분쟁이라도 생기면 달려가 돌봐주고 조정을 하는 것도 그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2월분 월급 7만원을 덜 받았다는 외국인 근로자의 호소에 한국인 사장을 만났더니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8일까지 있는 2월 급여를 일당으로 계산한 사장과 달로 계산한 근로자의 차이였던 것이다. 결국 사장이 껄껄 웃으며 7만원을 내놔 해결됐지만, 언어의 벽과 문화의 차이가 얼마나 쉽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나이지리아와 탄자니아 출신이 대다수인 근로자들에게 민 목사는 정신적인 아버지이자 해결사다. 한국어라고는 아직 몇 마디밖에 못 하지만 “목사님”이라는 단어만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해방둥이로 서울에서 출생한 민 목사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했다.
대기업에 10여년 몸담다가 전공을 살려 식품관련 사업을 하던 중 관심깊게 읽던 성경을 더 공부하고 싶어 아시아연합신학대학원과 중앙총신목대원에서 공부하고 97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평소 외국인 선교에 관심이 많았던 민 목사는 마침 주어진 캐나다 이민 기회를 이용해 토론토와 밴쿠버의 병원과 장애인 시설에서 목회활동을 벌였다.
“캐나다 목회 중 한국에 많은 외국인들이 동남아나 아프리카에서 들어와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2002년 현재 외국 근로자 수가 30만명이 넘어섰는데, 근무여건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죠. 잘 사는 나라보다 우리보다 못한 지역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당장 짐을 쌌지요.”
하지만 돌아온 한국 사정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쌈짓돈을 모아 마련한 목회자금으론 어디 한 곳에 교회를 지을 수도, 빌릴 수도 없었다. 처음 며칠은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있는 경기도 광주 일대를 돌아다녔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인천 만수교회 전명환 장로로부터 희소식이 날라왔다. “장애인을 위한 고용시설을 마련하려 했는데 사정이 있어 늦어지니 뜻이 있으면 우선 사용하라”는 복음이었다. 3층 건물 옥상에 자리잡은 50평 남짓한 피플스하우스는 이렇게 마련됐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주말 장터로 나가 노상 전도를 시작한 지 보름 만에 지금의 신도 10여명이 모였다. 예배가 있는 수·일요일이면 민 목사는 이들의 거처인 컨테이너나 공장 기숙사를 찾아 일일이 피플스하우스로 데려오고 다시 데려다주는 일을 반복한다.
“놀라운 건 외국인 근로자들이 국적별로 등급이 나누어져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겁니다. 나이지리아처럼 아프리카에서 온 근로자들은 동남아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자신들이 가장 낮은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이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민 목사는 열성을 다했다. 경기고 밴드부 시절 익힌 플루트과 트럼펫 연주로 음악선교를 하기도 했고 부인 민규정(閔圭貞·57)씨는 낯선 이들의 입맛에 맞춘 한끼의 식사를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 덕분에 당연히 빵을 좋아할 줄 알았던 나이지리아 신도들이 볶음밥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민규정씨의 호칭 ‘사모님’은 이들에게 ‘목사님’과 함께 가장 정다운 한국말이 되었다.
일요일마다 여는 한국어 교실 외에 4월부터는 컴퓨터교육도 할 예정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을 김춘복(차병원그룹 전무이사) 운영팀장과 이충구·강성훈·백정석·송양자씨 등 운영도우미들이 받쳐주고 있다. 이들은 두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피플스하우스를 돕기 위해 지혜를 모은다.
“성경에 ‘타국인이 너희 땅에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들을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들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언젠가 돌아갈 이들에게 사랑스런 또 하나의 조국으로 한국을 기억하게 하는 것도 제 목회의 한 부분입니다.”
나이지리아 근로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산 순둥이’ 윈스턴을 안아주며 민 목사가 힘주어 말했다. 피플스하우스(www.peopleshouse.net) (031)309-9199.
/溫宗林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