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에서 필자에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 중의 하나가 `생산적 복지’라는 용어이다. 시장친화적인 복지 혹은 성장에 기여하는 복지로 해석되는 이 말은 국가의 복지책임을 확대한 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 내용과 너무나 큰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당선자의 `참여복지’라는 화두가 주목을 끌고 있다. 정치적 수사로 등장한 이 용어는 학계에서조차도 낯설어 공무원들이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용어에 집착하기보다는 보건복지 공약의 내용과 방향을 자세히 뜯어보는 것이 새 정부의 정책방향을 가늠하는 데 훨씬 유익할 것이다. 노 당선자의 공약과 중요한 발언들을 살펴보면 보건복지정책 전체를 관통하는 몇가지 원칙이 보인다.
첫번째는 사회복지의 공급주체로서 국가의 역할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사회복지의 공급주체는 노인과 아동을 보호하는 가족, 민간보험을 제공하는 시장, 그리고 근로자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기업 등 다양하다. 그러나 노 당선자의 공약에서는 국가가 복지공급의 핵심 주체가 되고, 가족과 시장 등은 보충적 역할로 한정되어 나타난다. 다양한 복지공급 주체의 참여를 통해 공급주체를 다원화해야 한다는 `복지다원주의’적 해석도 노 당선자의 노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1980년대 서구에서 국가의 복지공급 능력이 한계를 보이면서 시장, 종교단체, 지역사회로 복지책임을 분산시키는 과정을 지칭한 복지다원주의라는 용어는 국가복지가 미흡한 우리 상황에 맞지도 않고, 공약에 나타난 복지정책 노선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두번째는 국가복지의 주 공급대상을 사회적 취약계층에 한정시킨 것이 아니라 전국민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복지의 공급대상을 전체 국민으로 설정하는 보편주의와 일부 취약계층으로 한정하는 선택주의로 대별해 본다면 우리나라의 기존 접근법은 `저소득층 위주의 복지’, `시장탈락자를 위한 안전망 위주의 복지’로 표현되는 선택주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노 당선자 공약의 곳곳에서 국가복지의 대상자를 일반 국민으로 확대해나가겠다는 정책의지가 나타나 있다. 특히 노인, 아동, 여성, 장애인 복지 등 사회복지서비스 분야, 그리고 경로연금, 장애인수당 등 현금급여에서 보편주의적 접근법이 두드러진다.
세번째로 노 당선자의 공약에는 복지정책의 결정 과정, 분배 과정, 그리고 소비영역에서 이해관계인의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의지가 묻어나 있다. 복지의 전과정에서 복지수혜자의 참여는 서구에서 국가복지의 경직성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부각되었다. 이해관계인의 참여를 통해 국가복지가 가져올 수 있는 행정의 관료주의, 다양한 인간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규격화된 복지서비스를 유연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공약에는 참여의 구체적 형태가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해관계인이나 공익 대표가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는 방식에서 더 나아갈 수도 있을 듯 하다. 좀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최근 `국민참여센터’의 예에서 보듯이 전혀 새로운 방식의 참여가 보건복지 분야에 도입될 수도 있다.
`참여복지’라는 용어를 액면 그대로 보면 그 속에는 노 당선자의 복지노선의 일부만이 담겨져 있다. `생산적 복지’가 김대중 정부의 사회복지노선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한 것처럼 `참여복지’ 역시 노 당선자의 복지정책의 핵심을 담아내기에 한계가 보인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는 정책을 상징하는 용어와 정책내용 사이에 괴리를 가져와 정책 실무진에게 쓸데없는 논란과 견강부회식 해석을 불러일으킨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참여복지라는 용어도 유사한 현상을 재발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책의 내용을 압축할 수 있는 정치적 용어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새 정부의 복지정책 노선이 복지공급의 핵심 주체로서의 국가, 국가복지의 접근방법으로서 보편주의, 그리고 복지의 생산, 분배, 소비과정에서의 이해관계인의 참여로 해석할 수 있다면, 새롭게 거론되는 `전국민 복지시대’라는 용어가 더 적절해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닌 듯 싶다.
김연명/중앙대교수·사회복지학 <한겨레>
노무현 당선자의 `참여복지’라는 화두가 주목을 끌고 있다. 정치적 수사로 등장한 이 용어는 학계에서조차도 낯설어 공무원들이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용어에 집착하기보다는 보건복지 공약의 내용과 방향을 자세히 뜯어보는 것이 새 정부의 정책방향을 가늠하는 데 훨씬 유익할 것이다. 노 당선자의 공약과 중요한 발언들을 살펴보면 보건복지정책 전체를 관통하는 몇가지 원칙이 보인다.
첫번째는 사회복지의 공급주체로서 국가의 역할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사회복지의 공급주체는 노인과 아동을 보호하는 가족, 민간보험을 제공하는 시장, 그리고 근로자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기업 등 다양하다. 그러나 노 당선자의 공약에서는 국가가 복지공급의 핵심 주체가 되고, 가족과 시장 등은 보충적 역할로 한정되어 나타난다. 다양한 복지공급 주체의 참여를 통해 공급주체를 다원화해야 한다는 `복지다원주의’적 해석도 노 당선자의 노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1980년대 서구에서 국가의 복지공급 능력이 한계를 보이면서 시장, 종교단체, 지역사회로 복지책임을 분산시키는 과정을 지칭한 복지다원주의라는 용어는 국가복지가 미흡한 우리 상황에 맞지도 않고, 공약에 나타난 복지정책 노선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두번째는 국가복지의 주 공급대상을 사회적 취약계층에 한정시킨 것이 아니라 전국민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복지의 공급대상을 전체 국민으로 설정하는 보편주의와 일부 취약계층으로 한정하는 선택주의로 대별해 본다면 우리나라의 기존 접근법은 `저소득층 위주의 복지’, `시장탈락자를 위한 안전망 위주의 복지’로 표현되는 선택주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노 당선자 공약의 곳곳에서 국가복지의 대상자를 일반 국민으로 확대해나가겠다는 정책의지가 나타나 있다. 특히 노인, 아동, 여성, 장애인 복지 등 사회복지서비스 분야, 그리고 경로연금, 장애인수당 등 현금급여에서 보편주의적 접근법이 두드러진다.
세번째로 노 당선자의 공약에는 복지정책의 결정 과정, 분배 과정, 그리고 소비영역에서 이해관계인의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의지가 묻어나 있다. 복지의 전과정에서 복지수혜자의 참여는 서구에서 국가복지의 경직성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부각되었다. 이해관계인의 참여를 통해 국가복지가 가져올 수 있는 행정의 관료주의, 다양한 인간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규격화된 복지서비스를 유연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공약에는 참여의 구체적 형태가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해관계인이나 공익 대표가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는 방식에서 더 나아갈 수도 있을 듯 하다. 좀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최근 `국민참여센터’의 예에서 보듯이 전혀 새로운 방식의 참여가 보건복지 분야에 도입될 수도 있다.
`참여복지’라는 용어를 액면 그대로 보면 그 속에는 노 당선자의 복지노선의 일부만이 담겨져 있다. `생산적 복지’가 김대중 정부의 사회복지노선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한 것처럼 `참여복지’ 역시 노 당선자의 복지정책의 핵심을 담아내기에 한계가 보인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는 정책을 상징하는 용어와 정책내용 사이에 괴리를 가져와 정책 실무진에게 쓸데없는 논란과 견강부회식 해석을 불러일으킨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참여복지라는 용어도 유사한 현상을 재발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책의 내용을 압축할 수 있는 정치적 용어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새 정부의 복지정책 노선이 복지공급의 핵심 주체로서의 국가, 국가복지의 접근방법으로서 보편주의, 그리고 복지의 생산, 분배, 소비과정에서의 이해관계인의 참여로 해석할 수 있다면, 새롭게 거론되는 `전국민 복지시대’라는 용어가 더 적절해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닌 듯 싶다.
김연명/중앙대교수·사회복지학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