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사회'는 ‘빈부격차’에서부터 출발한다.
빈부격차로 인한 세습사회를 ‘체제의 모순’으로 볼 것인가, ‘운용의 오류’로 볼 것인가에 따라 해결책은 달라진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느 정도의 빈부격차를 용인한다. 빈부격차는 개인의 자극을 유발하는 사회 발전기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소득격차는 피할 수 없다고 보는 주류경제학에서도 케인즈 이후 ‘작은 정부론’에서 벗어나 조세 및 재정정책 수단을 통해 소득재분배를 꾀하고 있다. 또 서구에서는 복지정책이라는 ‘안전판’을 마련해 사회갈등과 불안요인을 미리 방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성장’에만 치중해 ‘분배’의 문제가 심하게 왜곡됐다. 특히 1998년 경제위기 이후 불평등 분배 현상은 더욱 확대했다. 97년 이후 지난 2001년까지 5년간 상위 10%의 월평균 소득은 30% 넘게 늘어난 반면, 하위 10%의 소득은 4%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로 인해 부를 획득하는 수단으로 개인의 ‘노동’보다 세습 형태로 이전되는 ‘자본’이 점점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사회의 원칙인 ‘기회균등’의 원리가 점점 사라지고, 이는 사회 대다수 구성원들의 ‘희망’을 제거해 사회가 점점 극단으로 치달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런 불합리한 세습사회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우선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의 기회가 늘 열려 있어야 하고, 이와 함께 주택·의료 등 기본적인 삶을 구성하는 부분의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 나아가 삶의 가치를 ‘부’에만 두는 것이 아닌 다원주의적인 철학이 우리 사회 곳곳에 편재해야 하는 형이상학적 해결책도 언급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대학갈 수 있게=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개천에서 용나는’ 일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 2001년 우리나라의 연간 사교육비는 약 9조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울산대 이성림 교수(아동가정복지학과)가 통계청 도시가계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가계의 소득계층별 사교육비 지출 추이’를 보면, 초등학생을 둔 가계는 지난 10년 사이 월소득이 40% 증가한 데 비해 사교육비 지출은 177% 증가했다. 중고생 가계는 소득이 74.9% 늘어났고, 사교육비는 무려 203% 증가했다. 상위 30%의 가계에서 지출하는 사교육비가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사교육비의 불평등이 소득의 불평등을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김경욱 학생·청소년위원장은 “7차 교육과정으로 대표되는 현 교육체계는 창의성을 기른다는 명분으로 모든 분야에서 ‘수퍼맨’이 될 것을 강요한다. 그래서 학교수업만으로는 따라갈 수 없기에 사교육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현상은 공교육 붕괴와 맞물리면 저소득층 학생들의 교육기회 상실로 연결된다. 전문가들은 ‘공교육의 역차별’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한국교육개발연구원 이혜영 박사는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더 많은 시간과 보살핌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충남대 천세영 교수(교육학과)도 “교육 평등은 누구나 똑같은 교육을 받는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필요한 이들에게 더 많은 교육을 하는 ‘실질적 평등’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대학서열화로 나타나는 학벌 위주의 사회진출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해결 방안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가장의 암이 가정의 암이 되지 않도록=‘교육’이 세습 고리를 끊는 공격기제라면, 의료정책은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는 방어기제다. 중산층 이하 계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가족중 누군가가 큰 병에 걸리는 것이다.
암의 경우, 보통 3천만~5천만원의 수술·치료비와 이에 맞먹는 통원치료비, 여기에 환자 본인과 간병을 맡은 가족의 소득 상실 등을 따지면 1억5천만원 정도의 손실이 발생한다. 국내에서 암으로 사망하는 인구는 매년 6만명 정도다. 가족을 감안하면 20만~30만명이 고통을 받고 있다.
정부는 현재 이 해결책을 민간보험에 내맡겨둬 중산층 이하 가정은 이런 큰 질환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건강연대 등은 ‘본인부담 총액상한제’를 한 대안으로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연간 병원비 총액이 1천만원 이상일 경우 그 이상을 국가나 의료보험에서 지원해 주는 방식이다.
근본적 대안은 공공의료 확대다. 보건사회연구소 통계를 보면,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을 얻어 공공의료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개인이 의료비를 부담하기 힘든 최하 저소득 계층은 전체 국민의 10%선인 430만명에 이른다. 서울대 김창엽 교수(보건대학원)는 “현재 국내 의료시설중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보건소나 공공병원은 채 10%도 되지 않는다”며 “가장 자본주의적인 의료제도가 발달된 미국에서도 공공의료기관이 차지하는 비율이 30%”라고 지적했다.
●삶을 안정시키는 집값 안정=의료정책과 함께 중산층이 자본축적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끊임없이 치솟는 집값 때문이다. 서구의 경우 연평균 소득 대비 주택가격이 약 3배인데 한국은 4.6배이고, 서울은 7.5배다. 가구당 평균소득을 2400만원으로 잡을 때 한 푼의 지출 없이 꼬박 7년6개월을 저축해야 집을 살 수 있다.
국민은행의 도시주택가격 동향조사를 보면, 서울지역의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86년 54.8에서 172.1로 3배 이상 늘었다. 강남권은 190.5로 상승폭이 더 컸다. 김병욱 부동산 114 이사는 “분당과 일산처럼 서울의 ‘대안’이 될만한 질높은 주택단지의 공급이 끊긴 것도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을 부채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행정수도 이전은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행정수도 이전 외에도 기업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일정 기간 법인세 면제 혜택을 주는 등 인센티브 정책을 통해 수도권 인구를 분산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용만 한성대 교수는 “저소득층 주택자금 대출 등 금융적 뒷받침 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평균 7%에 이르는 주택자금 대출이자를 2%포인트만 낮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게 이 교수의 말이다. 실제로 싱가포르의 경우는 주택자금을 전액 대출해 주고, 20년에 걸쳐 되갚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비싼 부동산 가격에도 불구하고 전체가구의 95%가 자기 집을 가지고 있다.
이태희 신윤동욱 서정민 최혜정 기자 hermes@hani.co.kr -한겨레 신문
빈부격차로 인한 세습사회를 ‘체제의 모순’으로 볼 것인가, ‘운용의 오류’로 볼 것인가에 따라 해결책은 달라진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느 정도의 빈부격차를 용인한다. 빈부격차는 개인의 자극을 유발하는 사회 발전기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소득격차는 피할 수 없다고 보는 주류경제학에서도 케인즈 이후 ‘작은 정부론’에서 벗어나 조세 및 재정정책 수단을 통해 소득재분배를 꾀하고 있다. 또 서구에서는 복지정책이라는 ‘안전판’을 마련해 사회갈등과 불안요인을 미리 방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성장’에만 치중해 ‘분배’의 문제가 심하게 왜곡됐다. 특히 1998년 경제위기 이후 불평등 분배 현상은 더욱 확대했다. 97년 이후 지난 2001년까지 5년간 상위 10%의 월평균 소득은 30% 넘게 늘어난 반면, 하위 10%의 소득은 4%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로 인해 부를 획득하는 수단으로 개인의 ‘노동’보다 세습 형태로 이전되는 ‘자본’이 점점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사회의 원칙인 ‘기회균등’의 원리가 점점 사라지고, 이는 사회 대다수 구성원들의 ‘희망’을 제거해 사회가 점점 극단으로 치달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런 불합리한 세습사회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우선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의 기회가 늘 열려 있어야 하고, 이와 함께 주택·의료 등 기본적인 삶을 구성하는 부분의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 나아가 삶의 가치를 ‘부’에만 두는 것이 아닌 다원주의적인 철학이 우리 사회 곳곳에 편재해야 하는 형이상학적 해결책도 언급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대학갈 수 있게=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개천에서 용나는’ 일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 2001년 우리나라의 연간 사교육비는 약 9조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울산대 이성림 교수(아동가정복지학과)가 통계청 도시가계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가계의 소득계층별 사교육비 지출 추이’를 보면, 초등학생을 둔 가계는 지난 10년 사이 월소득이 40% 증가한 데 비해 사교육비 지출은 177% 증가했다. 중고생 가계는 소득이 74.9% 늘어났고, 사교육비는 무려 203% 증가했다. 상위 30%의 가계에서 지출하는 사교육비가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사교육비의 불평등이 소득의 불평등을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김경욱 학생·청소년위원장은 “7차 교육과정으로 대표되는 현 교육체계는 창의성을 기른다는 명분으로 모든 분야에서 ‘수퍼맨’이 될 것을 강요한다. 그래서 학교수업만으로는 따라갈 수 없기에 사교육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현상은 공교육 붕괴와 맞물리면 저소득층 학생들의 교육기회 상실로 연결된다. 전문가들은 ‘공교육의 역차별’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한국교육개발연구원 이혜영 박사는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더 많은 시간과 보살핌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충남대 천세영 교수(교육학과)도 “교육 평등은 누구나 똑같은 교육을 받는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필요한 이들에게 더 많은 교육을 하는 ‘실질적 평등’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대학서열화로 나타나는 학벌 위주의 사회진출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해결 방안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가장의 암이 가정의 암이 되지 않도록=‘교육’이 세습 고리를 끊는 공격기제라면, 의료정책은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는 방어기제다. 중산층 이하 계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가족중 누군가가 큰 병에 걸리는 것이다.
암의 경우, 보통 3천만~5천만원의 수술·치료비와 이에 맞먹는 통원치료비, 여기에 환자 본인과 간병을 맡은 가족의 소득 상실 등을 따지면 1억5천만원 정도의 손실이 발생한다. 국내에서 암으로 사망하는 인구는 매년 6만명 정도다. 가족을 감안하면 20만~30만명이 고통을 받고 있다.
정부는 현재 이 해결책을 민간보험에 내맡겨둬 중산층 이하 가정은 이런 큰 질환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건강연대 등은 ‘본인부담 총액상한제’를 한 대안으로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연간 병원비 총액이 1천만원 이상일 경우 그 이상을 국가나 의료보험에서 지원해 주는 방식이다.
근본적 대안은 공공의료 확대다. 보건사회연구소 통계를 보면,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을 얻어 공공의료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개인이 의료비를 부담하기 힘든 최하 저소득 계층은 전체 국민의 10%선인 430만명에 이른다. 서울대 김창엽 교수(보건대학원)는 “현재 국내 의료시설중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보건소나 공공병원은 채 10%도 되지 않는다”며 “가장 자본주의적인 의료제도가 발달된 미국에서도 공공의료기관이 차지하는 비율이 30%”라고 지적했다.
●삶을 안정시키는 집값 안정=의료정책과 함께 중산층이 자본축적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끊임없이 치솟는 집값 때문이다. 서구의 경우 연평균 소득 대비 주택가격이 약 3배인데 한국은 4.6배이고, 서울은 7.5배다. 가구당 평균소득을 2400만원으로 잡을 때 한 푼의 지출 없이 꼬박 7년6개월을 저축해야 집을 살 수 있다.
국민은행의 도시주택가격 동향조사를 보면, 서울지역의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86년 54.8에서 172.1로 3배 이상 늘었다. 강남권은 190.5로 상승폭이 더 컸다. 김병욱 부동산 114 이사는 “분당과 일산처럼 서울의 ‘대안’이 될만한 질높은 주택단지의 공급이 끊긴 것도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을 부채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행정수도 이전은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행정수도 이전 외에도 기업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일정 기간 법인세 면제 혜택을 주는 등 인센티브 정책을 통해 수도권 인구를 분산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용만 한성대 교수는 “저소득층 주택자금 대출 등 금융적 뒷받침 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평균 7%에 이르는 주택자금 대출이자를 2%포인트만 낮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게 이 교수의 말이다. 실제로 싱가포르의 경우는 주택자금을 전액 대출해 주고, 20년에 걸쳐 되갚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비싼 부동산 가격에도 불구하고 전체가구의 95%가 자기 집을 가지고 있다.
이태희 신윤동욱 서정민 최혜정 기자 hermes@hani.co.kr -한겨레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