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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불균형실태] 서울 돌산마을, 빈곤이라는 절망의 수렁
03-01-06 10:23 1,383회 0건
부와 빈곤은 세습되면서 고착돼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세습되어온 부와 빈곤은 아이엠에프 이후 더욱 소통될 수 없는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빈곤은 개인의 노력만으론 극복하기 힘든 ‘절망의 빈곤’이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자료를 보면, 1997년 1분기에 상위층 20%의 소득을 100으로 보았을 때, 하위층 20%의 소득은 23.2였다. 99년 3분기에는 18.9로 떨어졌다. 이 시대의 부와 빈곤의 구조와 풍경을 들여다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서울 강북구 미아6동 돌산마을에는 지난 95년 재개발사업으로 철거민이 된 50여세대가 7년째 임시주거단지에서 살고 있다. 50년대 한강홍수 이재민, 60년대 이농자, 70년대 무작정 상경자들이다. 돌산마을은 빈곤의 현대사 그 자체다.

박아무개(73) 할머니는 전남의 한 섬에서 태어났다. 할머니는 섬에서 소작농의 집으로 출가했다. 남편은 30대 무렵 ‘겨우 밥먹을 만한’ 자신의 농토와 돛단배를 장만했다. 그러자 간경화에 걸렸다. 한줌의 ‘부’는 병 앞에 무너졌다. 남편은 10년을 앓다 떠났고, 할머니는 농토와 배를 팔아 치료비를 댔다. 남편이 떠나자 할머니는 서울로 올라와 이 마을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노점상, 취로사업, 봉제공장 바느질로 생계를 이어왔으나 치솟는 전세값에 몰려 여지껏 이 마을을 떠나지 못했다.

아들 김아무개(40)씨는 어려서 소아마비에 걸렸다. 목발을 짚고 구두공장에서 일해 한 달에 40만~50만원을 벌었다. 그런데 지금은 합병증으로 더이상 일하지 못한다. 김씨의 소망은 검정고시로 2년제 대학에 들어가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다. 3과목은 합격했으나 7과목이 남아있다. “컴퓨터와 참고서로 공부하는 사람들과 경쟁하기 어렵다”고 김씨는 말했다.

송아무개(77) 할머니는 전북 부농의 딸이었다. 남편은 일본 유학생이었다. 남편은 한국전쟁 때 좌익활동을 했고, 전쟁이 끝난 뒤 경찰조사를 받고나서 죽었다. “온몸이 매에 흩어져 죽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남편이 죽자 농토도 흩어졌고, 주변사람들의 눈총을 못 견뎌 서울로 올라왔다. 60년대 초에 이 마을로 들어와 40여년을 살았다. 공사판 막노동을 하며 돈을 벌었다.

아들 문아무개(48)씨는 건설노동자로 일하다 3년전 공사장에서 다리를 다쳤다. 그래서 이 집안에서 돈버는 사람은 할머니의 손녀(24)뿐이다. 딸은 미용기술을 배워 미장원에 취직했다. 이제 막 돈벌이를 시작한 딸에게 세습된 가난의 무게는 무겁다.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여생을 부양해야하는 일이 딸 혼자 책임져야 할 몫이라면, 딸이 가난을 극복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딸은 “컴퓨터가 있어야 이 세상을 헤치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달 전 3백만원을 주고 컴퓨터를 구입했다. 또 아픈 이를 뽑고 임플란트 치아를 해넣는데 3백만원이 들었다. 카드로 결제했다. 앓아누운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6백만원 카드빚의 중압을 안고 딸은 매일 산동네를 내려와 미장원으로 출근한다.

자신의 노동수입으로 정부보조금을 겨우 물리친 사람들의 앞날도 한계선상에서 위태롭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주민 6명은 3년전부터 음식물 쓰레기 수거작업을 하고 있다. 자활지원기관의 보조를 받고 마을의 실직자들과 힘을 합쳐서 시작한 음식물 쓰레기 수거사업은 이제 자리잡혀가고 있다. 이들은 돈을 모으고 자활지원기관에서 융자도 받아 2.5t짜리 중고트럭 3대를 구입했다. 아침 6시부터 음식점 쓰레기를 수거한다. 한달 평균 1500만원 정도의 수거료를 걷는다. 한 달에 남자들은 120만원, 여자들은 8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이들은 정부보조금을 받지않는 자립노동자들의 최하위계층인 셈이다. 2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김현수(63)씨는 지난 72년부터 아이엠에프 직전까지 연탄장사를 했다. 부인은 무거운 연탄짐에 뼈를 다쳤다. 난치성 류마티스다. 한 달 치료비는 30만원이다. “아직은 버틸 수 있다. 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이들고 병들고 작은 사고라도 난다면, 아무 대책이 없다. ‘이나마라도 또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속에서 매일 뼈골이 빠지게 일하고 있다.” 김씨의 말이다.

김훈 기자 hoonk@hani.co.kr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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