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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新가족]버림받은 아이들의 하루
03-01-03 16:11 1,278회 0건
가속화하는 가족해체의 1차적 피해자는 어린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서 가족의 구성원이 되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해체의 희생자가 된다. 어른들이야 어떤 ‘명분’ 또는 ‘마음의 준비’라도 있지만 어린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그런 ‘무기’도 없이 세상의 풍파 속으로 내던져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20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있는 서울시립아동복지센터. 서울시내에서 버려진 연평균 약 600명의 아이들이 머물다가 고아원 등 각종 보호시설로 보내지는 일종의 ‘희망없는 정거장’이다. 이곳에 온 지 열흘 된 김철우군(가명·10)은 자신의 운명을 눈치챈 듯 2시간여의 인터뷰 시간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동생 김보람양(가명·8)은 “책가방에 엄마 휴대폰 번호가 있는데 책가방을 안 가지고 와서 엄마한테 전화를 못하고 있다”는 철없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다.

서울시립아동복지센터 상담일지에 따르면 이들 남매가 이곳에 온 것은 지난해 12월10일. 김양 남매를 데려온 큰어머니는 “애들 아빠가 도박에 빠져 거액의 신용카드 빚을 진 채 6월 초 야반도주를 했고 애들을 키우던 엄마도 결국 11월 초 아이들만 집에 둔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했다.

아이들이 큰집에 맡겨졌을 때 아이들의 엄마는 “이혼하면 아이들을 데려갈 테니 그때까지만 키워달라”고 연락을 취해왔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이들의 큰어머니도 “할인매장에서 밤늦게 일하느라 아이들 밥도 챙겨주기 힘들다”면서 아이들을 아동복지센터에 맡겼다는 것이다. 그래도 보람이는 “엄마가 이혼하면 우리 데리러 온대요”라면서 초등학교 1학년생다운 밝은 표정으로 재잘거렸다.

-뭐가 가장 슬프니.
“엄마한테 전화 못하는 거”
-엄마한테 전화 못하는 게 왜 슬프니.
“아빠는 조금 보고 싶고 엄마는 많이 보고 싶어서”
-아빠는 왜 조금 보고 싶니.
“아빠는 술 먹고 늦게 들어올 때 우리가 안일어나면 뺨 때리고 그래”
-엄마는 왜 많이 보고 싶니.
“잠잘 때 책 많이 읽어줘서”

이곳에 온 아이들의 60%는 보람이 남매처럼 ‘카드 고아’다. 한국전쟁 이전 대가족시대에는 ‘사돈의 팔촌’일지라도 집안에 어른이 있는 한 부모잃은 아이를 거둬주었다. 전쟁 이후 ‘전쟁고아’가 있었다. 경제개발시대에는 ‘경제고아’가 있었다. 지금은 절대빈곤이 아니라 부모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양육이 가능한데도 무책임하게 자녀를 포기하는 ‘수천만원짜리 카드빚 고아’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가족해체는 부부갈등, 가치관 변화가 주원인이고 여기에 카드 빚을 핑계대며 가속화하는 형국이다.

이곳에 근무한 지 만3년2개월여 됐다는 이규동 보호상담실장에 따르면 ‘무조건적 희생의 화신(化身)=엄마’라는 모성본능의 신화 또는 이데올로기도 산산이 깨져버린 듯하다.

아이들도 별 어려움 없이 곱게 자란 탓일까. 아니면 부모의 맞벌이 등으로 혼자 지내는 데 이미 익숙해진 탓일까.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좀체 울지 않는다고 했다. 이실장은 “요즘 오는 아이들은 울지 않고 다른 원생들과 쉽게 친해진다”고 했다.

이제 대가족은 거의 해체됐다. 핵가족마저 위기를 맞고 있다. 직계부모가 아니면 누구도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그 부모마저 ‘아무도 아무것도 참지 않는’ 이기심으로 자녀를 대하고 이혼을 당당한 선택의 하나로 여긴다. 그래서 전가정의 6.8%가 해체된 상태다. 남은 것은 자녀유기와 양육기피. 아이들은 울지 않는다. 다만 버려질 뿐이다.

한국가정사연구소(소장 추부길)는 지난 연말에 가정 분야의 10대 이슈를 선정, 발표하면서 ‘이혼과 가정해체’를 으뜸으로 꼽았다. 지난 한해동안 버려진 아이들이 1만2천명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카드빚은 허울일 뿐, 가정과 가족에 대한 윤리와 의무감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다. ‘고아(孤兒)=부모 없는 아이’라는 정의는 수정돼야 한다.

〈김중식기자 uyou@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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