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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新가족]내몰리는 독거노인 실태
03-01-03 16:09 1,210회 0건
늘 화재 일촉즉발 상태의 판잣집촌. 수돗물은 진즉 얼어붙었다. 도심에선 도무지 쌓이지 않는 눈이지만 초겨울에 내린 눈이 이듬해 봄까지 얼어붙어 있는 곳.

서울 구산동 ‘결핵환자촌’에 사는 김상길씨(70)가 한국 근대가족해체사(史)의 과정을 온몸으로 보여준다면 같은 동네에 사는 한영상씨(가명·70)는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장년·노년 가장(家長)의 말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주인공들이라 할 만하다.

평북 운산에서 2녀1남의 막내로 태어난 김씨는 일제시대에 홀로 중국 베이징 근처 소도시의 친척집으로 보내져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큰누나 매자씨(생존시 84세)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고 작은누나 ‘목석’(아명·생존시 78세)은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13살에 시집보내졌다.

해방이 되자 13살의 김씨는 배를 타고 인천을 거쳐 서울에 정착했다. 김씨는 중국어 실력 덕분에 ‘미 헌병대’ 통역 일을 했고 그 인연으로 당시 30대이던 ‘존 바커 주니어’ 상사의 양아들로 들어갔다. 1948년 미군 철수 때 양부는 “나중에 데려간다”며 김씨를 서울 남대문 ‘수도청’(현재의 경찰청)에 근무하던 이종호 형사에게 의탁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두번째 양부 이형사는 “인민군에게 끌려갔다”는 납치설이 돌았다.

김씨는 일제시대에 1차 가족해체를 경험했고 한국전쟁 때는 두 양부를 잃었다. 김씨에게 가족이 있었던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전쟁 때 왼쪽다리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고 노동력을 상실, 아직까지 혼자 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씨는 82년 “심장병 환자는 뛰기가 힘들지만 폐결핵 환자는 걷기도 힘들다”는 그 폐결핵에 걸려 일을 못하게 됐고 급기야 처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85년부터 홀로 살기 시작, 지금껏 ‘독거(獨居)노인’ 신세다. ‘가장=돈 버는 기계’가 모아놓은 돈도 없이 어느날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을 때 가족해체의 주범이 되는 것이다.

한씨는 서울에서 6남3녀의 둘째이자 차남으로 태어나 62년 결혼, 2남1녀를 두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꾸리던 한씨의 실업상태가 길어지자 가족들은 결핵 전염 회피와 “산 사람은 살아야겠다”는 이유로 별거(別居)를 요구했다. 한씨 역시 “평소 가족에게 잘해준 게 없으므로 두말 않고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한씨는 “나이 먹고 돈 없으면 가족은 물론 사회적으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면서 “가장이 실직하면 가정분란이 생기고 가족으로부터 소외를 당하는 건 공식(公式)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들처럼 가난과 질병 등으로 ‘결핵환자촌’에 모여사는 독거노인은 전체 210가구의 절반에 가까운 약 100가구. 이곳 156명 결핵환자 가운데 3분의 2에 해당하는 노인(여성환자 약 20명)이 ‘나홀로 가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한국 인구구조의 특징은 고령화와 독거화(獨居化)가 동시에, 매우 급격히 진행된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2000년 말에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 내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인 고령인구는 3백37만2천명으로 95년에 비해 27.7% 늘었고 2040년에는 14.4%가 될 전망이다. 1인 가구는 2백22만가구로 95년도에 비해 35.4%나 늘어났는데 1인 가구 가운데 60세 이상 노인은 70만명으로 전체의 31.8%를 차지했다.

하지만 노인들의 생계는 본인 또는 배우자 부담이 32.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자녀 또는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인구의 67%가 독립적인 경제능력이 없는 한 ‘결핵환자촌’처럼 사회의 온정으로 생존을 이어가는 독거노인 촌락이 전국 곳곳에 생길 것은 불보듯 뻔하다.

〈김중식기자 uyou@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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