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

언론보도

목록
현대판 고려장…뇌경색 노모 6개월째 병원에 방치
02-08-13 10:45 1,804회 0건
1남 6녀 자식들 "어머니 모시기 싫다"
반신불수 칠순 할머니 "집에 가고싶나" 눈물만

지난 7일 중앙일보 시민언론부의 기사제보.불만처리센터 전화(02-751-9000, 9911)가 울렸다.

자신을 병원 관계자라고 밝힌 제보자는 "칠순이 넘은 할머니가 병원에 뇌졸중으로 입원 중인데, 찾아오는 자식이 없다"며 "갈수록 메말라가는 세태에 경종을 울려달라"고 했다. 사건사회부 기자가 사연을 취재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구로구의 한 종합병원 5층 병실. 6인실의 한 침대에 수심이 가득한 얼굴의 할머니가 누워 있었다.

문병 온 가족들로 다른 환자들 침대는 떠들썩했지만 달랑 혼자뿐인 이 할머니는 창 밖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슬하에 1남6녀를 뒀다는 尹모(74)할머니. 尹할머니가 이곳에 온 지는 이미 6개월째다.

다섯째딸네 집에 머물던 할머니는 지난 3월 초 방바닥을 닦다가 갑자기 실신해 119구급차에 실려 이 병원에 도착했다. 병명은 뇌경색.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할머니는 지난 4월 말부터 비록 몸의 반쪽은 쓰지 못하지만 보조기구에 의지해 조금씩 걸을 수도 있게 됐다.

그러나 그 후로 세 달이 지난 지금까지 尹할머니는 병실에서 창살없는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식들 중 누구 하나 할머니를 데려가겠다고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측은 4월 초 尹할머니의 병원비(5백여만원)와 퇴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아들.며느리.딸 등 10여명에게 전화 연락을 했지만 아무도 데려가겠다고 하지 않았다.

병원으로 尹할머니를 모셔온 다섯째딸만이 이따금 병실에 들렀으나 병원비 얘기가 나온 뒤 발길을 끊었다. 병원 근처의 반지하 전셋방에서 산다는 다섯째딸은 "형편이 어려운 데다 폐렴에 걸려 어머니께 병을 옮길 수도 있어 모셔가지 못한다"는 연락을 해왔다는 것.

기다리다 못한 병원 측이 나섰다. 병원 측은 지난달 11일과 26일 주소가 확인된 할머니의 자식들에게 모두 14통의 내용증명을 보냈다.'형제들끼리 상의해 치료비를 해결하고 퇴원시키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를 데려가겠다는 자식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며느리는 '남편과 사실상 이혼한 상태며 남편 가족의 문제이니 남편에게 연락하라'는 내용증명을, 아들은 '어머니가 매사에 신뢰성이 없으며 거짓말 등으로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내용증명과 함께 7남매가 분담할 경우에 해당하는 병원비라며 스스로 산정한 20만원을 전신환으로 병원 측에 보내왔다.

이 병원의 원무과장은 "내용증명을 보냈는데도 전화를 하거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7남매 중 몸이 불편한 부부 등 사정이 딱한 형제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 그렇지 않은 자녀들도 할머니를 모셔가지 않고 있다"며 난감해했다.

한 간호사는 "아무리 부모.자식 간에 말 못할 사정이 있어도 뇌경색으로 쓰러져 반신불수인 부모를 이렇게까지 방치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며 안타까워했다.

尹할머니는 자식들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가슴 아픈지 "약이라도 있으면 먹고 죽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잠시 후 "죽든 살든 아들 집에 돌아갔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자식의 변(辯)=尹할머니의 아들은 "6년 전 여동생이 11억여원을 빌려가 갚지 않는 바람에 사업이 부도나 이혼 위기를 맞는 등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어머니는 다시 동생의 빚 보증을 서 형제.자매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고 주장했다.

아들은 또 "꼭 병원비 때문만이 아니라 자식들 간 잘잘못을 가려주는 역할을 하지 않은 어머니에게 환멸을 느꼈다"며 "당장 내가 모실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Fixed headers - fullPage.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