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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삶' 돌보기 11년
01-10-23 10:01 1,423회 0건
[빈첸시오 신부] 성남서 '가난한 삶' 돌보기 11년

“절대로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밥을 뜰 때도, 반찬을 드릴 때도 꼭 두 손으로 하세요.”

지난 19일 오후 6시 경기도 성남시 ‘안나의 집’. 매일 저녁 노숙자와 빈민 300여명이 찾아와 한끼 식사를 해결하는 이곳 컨테이너 식당에서 보라색 앞치마를 두른 한 외국인 신부가 ‘유창한’ 한국말로 자원 봉사자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이탈리아인 김하종(44·본명 보르도 빈첸시오) 신부. 지난 21일 그의 한결같은 헌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서울시 명예시민증’을 받은 그는 성남지역 빈민들의 대부로 통한다. 90년 한국에 와 11년간 한국의 노숙자,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왔다.

로마 그레고리안대학 시절 빈민운동을 시작한 그는 87년 사제 서품을 받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선교를 위주로 하는 ‘오블라띠 선교수도회’에 가입했다. 90년 “한국으로 가라”는 수도회의 파송 명령을 받고 곧바로 짐을 쌌다. 한국에서 그의 첫 정착지는 성남시 목련마을. 혼자 사는 노인들을 찾아 먹을거리를 나눠주고, 장애인들을 찾아 팔·다리를 주무르는 게 그가 한 첫 일이었다.

IMF 외환위기로 실직자가 늘어난 98년에는 ‘안나의 집’을 설립했다. 삶의 의욕을 잃고 넘어져가는 실직자,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상담을 했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던 많은 노숙자들이 이곳을 찾아왔고 정신적·경제적으로 회복해 돌아갔다. 그 사이 그를 돕는 자원봉사자가 4명에서 400여명으로 늘었다. 종합병원 의사가 의료봉사를 하고, 대학교수는 가출 청소년들을 상담했다.

그의 하루 일과는 가락동 등 강남 일대를 돌며 음식점에서 팔다 남은 빵과 우유, 배추 등을 실어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장을 볼 때면 악착같이 물건 값을 깎아 ‘한국사람 다 됐다’는 얘기를 듣는다. 한 달 800만원씩 드는 운영비를 충당하려면 알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도 낡은 승용차를 몰고 빈민촌 골목을 누비는 그는 “평생 한국을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빈민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 안석배기자 sbah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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